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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우즈베키스탄-실크로드의 중심지에 서다.(일간스포츠 게재) 등록일 2008-09-22 / 조회수7223  

 

고려 시대에 ‘비단길’을 통해 들어온 서역의 물품들이 벽란도(지금의 개성)에서 거래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비단길의 중심에 우즈베키스탄 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막연히 ‘비단길’ 즉, ‘실크로드’는 중국과 로마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길이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깊은 인연을 맺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라,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벡에서 정신없이 적응해 나가는데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우즈벡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러자 용기가 생겼다. 교과서에서만 봐 왔던 ‘실크로드’를 밟아 보겠다는 용기가...

 

사막 위의 작은 왕국, 부하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2박 3일의 시간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오후까지는 재활원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우즈벡의 고대 도시를 여행할 때의 순서는 사마르칸드, 부하라, 그리고 히바 순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과 교통편의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타슈켄트 사브레늬이 박살(타슈켄트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가 있는 기차역)에서 금요일 저녁 8시 40분 기차를 타고, 사마르칸드를 지나서 부하라로 향했다. 타슈켄트에서 기차를 타고 10시간은 달려야 부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즈벡 기차는 ‘구빼’라고 불리는 침대칸이 있었다. 나는 나보이(최초로 우즈벡어 문학을 썼다는 민족 작가 이름을 본따 지어진 도시 이름)에 살고 계신다는 루이진 아끼야(루이진 아저씨)· 고잘 아빠(고잘 아줌마) 부부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부는 딸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다며, 직접 통화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러시아어는 서툴렀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만은 컸던 것 같다. 창밖으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사막이 계속 펼쳐지고 있었다.

 

옛 부하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쿠켈다시 메데레세(신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라비하우스(연못 이름이다.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큰 물가의 도시의 중심지가 된다.)가 첫 행선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기념품 가게로 변해버린 아쉬운 모습이었다. 그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니, 칼랸 성원(‘칼랸'은 ’크다‘는 뜻)이 나왔다. 칼랸 성원에는 중앙에 오래된 뽕나무가 고즈넉하게 서 있었고, 뒤쪽으로 미나레트(첨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부하라의 전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는 곳이었다. 나는 직접 올라가 보기로 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어두운 수백 개의 계단을 거의 기어오르다시피한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옛날 이 곳에서 죄인들을 떨어뜨렸을 것을 생각하니 씁슬한 생각도 들었다.

 

캴랸 성원을 빠져나와 다시 5분 정도 걸으니, 옛 ‘실크로드’의 명성답게 온갖 물건들을 사고파는 굼바스라는 시장이 나왔다. 물론,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릇, 실크, 전통악기 등을 파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복잡한 시장길을 빠져나와 깨끗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니, 아름다운 건물 하나와 마주쳤다. 이스마엘 샤머니드 였다. 안에는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우즈벡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기도를 경청했다.

 

코피온 18기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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