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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우즈베키스탄-아살로므 말레이꿈! 우즈베키스탄 등록일 2008-09-22 / 조회수3575  

우즈벡, 그리고 재활원의 아이들과의 만남 3월 4일, 설레는 마음 반, 두려움 마음 반으로 우즈벡발 비행기에 올랐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7시간 30분의 비행 후에 도착한 우즈벡은 한국의 작은 도시 공항 같았다. 수도 타슈켄트의 레온싸인이 반짝거리는 중심지에 위치한 공항을 빠져나오자 주위는 금새 어두컴컴해졌고, 아직은 지난 겨울(2008년 겨울은 우즈벡에도 100년만에 찾아온 추위로 온도가 영하60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의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밤공기는 서늘했다. 그렇게 우즈벡에서의 첫 밤이 지나갔다.

 

나는 우즈벡에서 타슈켄트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이크오타라는 지역에 위치한 영락어린이재활원에서 장애아동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재활원의 아이들은 뇌성마비, 발달지체, 다운증후군, 그리고 사고로 장애를 입은 아이까지 장애의 종류가 다양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마샤 아빠(나의 러시아식 우즈벡 이름이다)’라고 나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경험은 그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한 5개월 5일의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동안 성장했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야만 했던 디요라(7)는 보조기를 사용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셈을 하지 못하던 구드랏(7)은 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희망’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 사막 위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우즈벡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여, 중앙아시아 다섯 국가와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가 명칭이 ‘검은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을 떠올리면 대부분이 그 근접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우즈벡의 면적은 한반도 면적의 약 4배 정도로 매우 넓다. 이 넓은 땅은 대부분이 사막 지대로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석유와 철광석 등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우즈벡은 다민족 국가이기도 하다. 우즈벡, 러시아, 카작, 따따르, 그리고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들까지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또한, 과거와 현대도 공존한다. 타슈켄트 거리를 걷다보면, 쥬비제이까와 짜판(이슬람식 남성 복장)을 입은 할아버지들, 벨벳과 같은 소재의 긴 치마와 차도르를 두른 아주머니들, 그리고 나시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나는 마치 1930년대 한국의 거리를 활보하던 한복 차림의 사람들과 모던 보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 우즈벡인들의 생활 종교, 이슬람

 

 우즈벡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던(Post-modern)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했다. 타슈켄트의 구시가지 철수 바자르( 철수 시장) 근처에 위치한 중앙 이슬람 성원은 그 대표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철수 바자르에서 3번 다마스(이종의 마을버스로 차 이름이 명칭이 되어 버렸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웅대한 건물 하나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그 곳이다. 비교적 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렇다할 특징은 없지만, 우즈벡이 이슬람 국가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장소이다. 그리고 사원은 규모가 꽤 큰데, 내부에 신학교, 기숙사를 비롯하여 몇 개 남지 않은 코란의 사본이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도 있다. 매주 금요일 12시는 합동 기도 시간으로 타슈켄트 전역에서 1,000여 명이 넘는 이슬람 남성 신도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데, 그 복장은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사원 전체에 울려퍼지는 믈라(이슬람 지도자)의 기도 소리는 왠지 이슬람 신자도 아닌 나의 마음까지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코피온 18기 이주희

[35]우즈베키스탄-풍성했던 우즈베키스탄의 봄 그리고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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