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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캄보디아-4개월의 시간,난 캄보디아 인이 되어간다. 등록일 2008-09-22 / 조회수3948  

18기 이진희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고서 나는 다시금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뜻 한국에 있을 때 듣기로는 ‘한국에 일하러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나마 그 나라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빈곤과는 거리가 먼,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캄보디아로 파견 나온 동기는 시골에 있는 고아원APCA에서 정말로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봉사다운 봉사를 하는 것만 같은데,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과연 봉사가 맞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나를 자꾸 힘들게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것은 그저 나의 짧은 생각일 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원봉사는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어렵고 고된 일들을 상상할 것이다. 나 또한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랬으니까.

 

우린 캄보디아인들에게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치는 대신 한 달에 한번씩 그 학생들과 함께 현지 NGO 세 곳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나간다. 이 봉사의 취지는 현지인들에게 NGO와 봉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데 있다. 더불어 기관의 아이들에게는 현지인이 직접 봉사함으로써 이질감을 줄여줄 수 있기에 외국인이 봉사하는 것 이상의 기대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난 내가 가르치는 한글반 학생들과의 봉사활동을 통해 보통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봉사활동도 경험하고, 여러 기관을 다니면서 NGO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봉사자들이 느끼고 배우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얻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순수한 캄보디아의 사람들에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난 잠시였지만 대체 무엇을 부족하게 느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부족한 건 나였다. 도움을 주러 왔던 나는 되려 이 나라사람 통해 도움을 받고 배우고,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5월 중순쯤 캄보디아 공휴일인 캄보디아 왕의 탄생일에 맞추어 어머니와 이모님께서 방문하셨다. 어머니껜 죄송했지만 오시는 길에 많은 음식재료를 부탁 드렸다. 나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음식잔치를 하고 싶었다. 세가지 음식재료를 부탁 드렸는데 어머니와 이모님께선 우리 학생들을 위해 흔쾌히 다섯 가지나 되는 한국음식재료를 준비해오셨다. 캄보디아에 오신 다음날 아침부터 현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하루 종일 음식준비를 하셨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생들은 그 동안 배운 한국어로 밝게 어머니와 이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엄마,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인사 한마디에 가슴 가득 스며드는 뿌듯함. 왠지 어머니와 이모님도 자랑스러워 하시는 듯 했다.

 

싹싹한 우리 학생들은 오자마자 팔을 걷어 올리더니 주방보조를 자청했다.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는 학생, 땀을 닦아 주는 학생, 부채질을 해주는 학생. 어머니와 이모님께서는 더 즐겁게 음식을 만드셨다. 김밥, 불고기, 잡채, 부침개, 떡볶이 그리고 한국에서 손수 담가오신 파김치를 뷔페식으로 차려내니 약 35명의 학생들이 모여 앉았다. “엄마,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가 된 듯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된 하루인데도 불구하고 나눔의 즐거움을 가득 느낀 하루였다.

 

이렇게 하루하루 무언가를 느끼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의미 없이 지나기도 하며 정신 없이 4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의 비일상들은 점점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햇빛에 그을려 까맣게 변한 내 얼굴과 조금은 자연스러워진 크메르어(캄보디아어). 이젠 학생들도 “선생님은 거의 캄보디아인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APCA의 아이들은 이제 내 이름을 가족처럼 불러준다.

 

코피온 18기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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